해운대 오션타워로 가는 길, 오후 다섯 시 반
작성자 정보
- 이소룡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7 조회
- 목록
본문
오후 다섯 시 반.해운대의 하늘이 조금씩 물드는 시간이다.
파랗던 하늘이 주황빛으로 번지고, 오션타워의 유리 외벽이 그 빛을 받아 반짝이기 시작하는 그 시간. 나는 오늘도 이 풍경 속을 걸어 출근했다.
누군가에겐 퇴근길인 시간이, 나에겐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노을 속으로 출근한다는 것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걸을 때, 나는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좋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가 있지만, 동시에 하루를 마쳤다는 홀가분함도 있다.
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걸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저분들 중에 오늘 집을 알아본 사람이 있을까. 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운대에 터를 잡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한 뒤로, 거리를 걷는 시선이 달라졌다.
건물을 보면 층수를 헤아리게 되고, 상가를 보면 공실률이 눈에 들어온다. 오션타워 앞을 지날 때면 저 높은 곳에서 바다가 어떻게 보일지, 그 뷰가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공부가 몸에 스며들고 있다는 신호일 거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https://www.youtube.com/@삶의지혜TV-r1p
가방 속의 두 세계
오늘 내 가방 안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었다.
공인중개사 시험 교재. 그리고 오늘 만날 고객님의 메모가 빼곡한 수첩.
교재는 솔직히 아직도 버겁다. 민법이며 공시법이며, 페이지마다 낯선 말들이 가득하다. 오늘 새벽에도 형광펜을 쥐고 앉아 용익물권 파트를 두 번이나 읽었다. 읽을 때는 알 것 같다가도, 덮으면 다시 안갯속이다. 그 반복이 지금의 내 공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는다.
아마 수첩 때문일 거다.
수첩에는 오늘 만날 고객님에 대한 메모가 있다. 어떤 조건을 원하시는지, 어떤 동네를 선호하시는지, 이전에 나눈 대화에서 은근히 언급하셨던 것들까지. 그 메모를 다시 읽으면, 교재 속 딱딱한 법조문들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아, 이게 결국 저 분의 계약서가 될 수 있겠구나.
그 연결이 느껴지는 순간, 공부가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된다.
고객님을 만나러 가는 마음
오후 다섯 시 반의 해운대는 낮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카페마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바다는 노을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고, 오션타워의 실루엣이 그 뒤로 선명하게 서 있다.
이 풍경 속을 걸으며 나는 오늘 만날 고객님을 생각했다.
이 동네를 처음 눈여겨보기 시작하신 분. 해운대라는 이름이 주는 설렘과, 이사라는 결정이 주는 무게를 동시에 안고 계실 분. 아마 오늘 이 노을도 보셨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의 삶을 조심스럽게 그려보셨을지도.
나는 그 그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자격증은 아직 준비 중이다. 하지만 고객님 앞에서만큼은, 이미 마음가짐은 중개사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숫자 하나, 조건 하나가 그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잊지 않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준비다.
발걸음을 조금 고쳐 잡았다.
오션타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
오후 다섯 시 반, 남들이 하루를 닫을 때 나는 하루를 여는 사람이다.
처음엔 그게 조금 외롭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이 시간이 나만의 것 같아서 좋다. 노을이 지는 해운대를 온전히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것도, 붐비지 않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시간대를 선택한 덕분이다.
공인중개사 공부도, 고객님을 만나는 일도, 결국 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사람들의 집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
오늘도 오션타워 앞에 섰다.
노을은 어제보다 조금 더 붉었고,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그걸로 오늘 하루는 충분하다.
오후 다섯 시 반의 해운대에서 — 공부하고, 걷고, 만나며.
#해운대룸싹롱에서...
관련자료
-
다음









